목양칼럼
2025 마사야 전도대회의 은혜
2025 니카라과 마사야 주 전도대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셨습니다. 2월 21일(목) 니카라과에 도착한 날은 빠까야 예수제일교회에서 오후 사역을 했습니다. 여기서는 안경, 침술, VBS 등의 사역만 했습니다. 22일과 23일은 연합팀과 함께 마사야제일교회에서 오전과 오후에 중보기도, 안경, 침술, 일반진료, 치과, VBS 사역 등을 했습니다.
2025 니카라과 마사야 주 전도대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셨습니다. 2월 21일(목) 니카라과에 도착한 날은 빠까야 예수제일교회에서 오후 사역을 했습니다. 여기서는 안경, 침술, VBS 등의 사역만 했습니다. 22일과 23일은 연합팀과 함께 마사야제일교회에서 오전과 오후에 중보기도, 안경, 침술, 일반진료, 치과, VBS 사역 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은 마사야제일교회 뜰에서 이동홍 선교사님이 세우신 21개 장로교회의 연합 전도집회로 모였습니다. 약 1,000여 명이 모였고 현장에서 47명이 결신 카드를 내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토요일은 라 뽀마 축구장에서 마사야 주의 약 280여 교회가 연합하여 전도집회로 모였습니다. 현지인 목회자 후안 까를로스 목사님은 16,000명이 모였다고 보고했습니다. 300여대의 버스에 꽉꽉 차서 물밀듯이 집회 장소로 들어오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가 은혜였습니다. 뜨거운 성령의 역사와 함께 현장에서 222명이 결신카드를 제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마사야 전도대회 명칭은 ‘Masaya para Cristo Crusade’입니다. 그 첫 자를 따서 MCC로 2025년 마사야 전도대회의 의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Mending for Restoration(회복성)
하나님은 두 가지로 회복과 부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첫째는 이 전도대회를 통해 현지 교회들의 회복과 부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현지 교회들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 대회를 위해 일년동안 기도하고 준비합니다. 그리고 이 대회를 통해 성도의 치유, 교회의 부흥, 새 신자의 등록 등이 이루어 집니다. 둘째로 참여하는 선교팀의 회복과 부흥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과 생명을 구원하는 사역에 쓰임받는 기쁨의 눈물이 사역 내내 흐르게 합니다.
2. Collaboration(연합성)
연합 선교팀, 현지 한인 선교사님들과 연합, 현지인 목회자들과 연합, 현지 교회 협의회와 연합 등이 이 전도대회의 인프라를 구축합니다. 자기 힘을 자랑하는 곳에는 연합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비전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자들 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연합입니다. 여기에 시편 133편의 헐몬의 이슬의 복과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복이 함께 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선교지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축복입니다.
3. Continuation(지속성)
14차까지 계속되면서 작은 물방울로 시작된 전도대회가 이제는 큰 강물이 되어 황폐한 땅을 적시게 되었습니다. 14차까지 약 23만 명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약 7,600명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1) 저들이 요청하는 중보기도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아픈 곳이나 집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도 요청했으나, 금년에는 아이들이 자신들도 커서 선교팀처럼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요청을 하는 것을 보며 깜짜 놀랐습니다. 또 가족의 신앙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 요청하는 모습이 현저히 늘어나게 됨을 보게 되었습니다.
2) 집회 참여하는 자세도 많이 성숙되어 보였습니다. 초창기에는 보통 30분 늦게 시작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작 전에 이미 자리는 다 찼고, 심지어 서 있는 사람들로 운동장이 가득 찼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도 너무 진지했습니다. 말씀의 반응도 매우 뜨거웠습니다. 집회가 끝나고도 수 많은 사람들이 갈 줄 모르고 서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이런 좋은 집회를 열어줘서 고맙다는 현지인들의 말에 보람과 감사를 느꼈습니다
3) 이 전도대회를 통해 다음 세대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현지인 찬양 인도자, 의료팀, 통역팀 요원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도대회를 통해 받은 사랑을 전도대회를 위한 헌신으로 갚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인 선교사님들의 자녀들이 미국과 한국에서 대학 졸업이나 결혼 후 다시 자신들이 자라난 니카라과 선교사로 헌신해서 돌아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니카라과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니카라과에 잘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니카라과에 잘 도착했습니다. 짐도 모두 잘 도착했고 전도대회 후원과 이동홍 선교사님의 치료비 후원도 잘 전달했습니다.
공항에서는 모든 짐을 무조건 검열하는데 음식이나 안경이 있으면 이제는 공식적으로 3불만 내면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수월하게 공항 통과를 한 것 같습니다.
이동홍 선교사님은 댁에서 지시만 하시고 현지 선교사님들이 직접 진행하시는데 그동안 잘 훈련이 되어서 매우 질서있게 첫 날 사역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은 장로교 연합집회로 모였는데 14차까지 오면서 현지 목회자들도 잘 협조가 되어서 정말 은혜가 넘쳤습니다. 토요일은 약 300대 정도의 버스가 동원되고 만 명 정도가 운집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
봄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도약을 위한 제자훈련 안내가 주보에 실렸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신앙 성숙이나 교회의 영적 자질은 제자훈련을 빼놓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일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제자훈련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던 일을 오늘 주님의 몸된 교회가 계승해야 한다는 성경적 교훈에 순종하면서 온 세월이었습니다(마 4:23 - 가르치심, 복음전파, 고치심).
봄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도약을 위한 제자훈련 안내가 주보에 실렸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신앙 성숙이나 교회의 영적 자질은 제자훈련을 빼놓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일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제자훈련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던 일을 오늘 주님의 몸된 교회가 계승해야 한다는 성경적 교훈에 순종하면서 온 세월이었습니다(마 4:23 - 가르치심, 복음전파, 고치심).
제자훈련을 하면서 목표를 드리기 위해 야구의 다이아몬드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1루를 101 제자훈련, 2루를 201, 3루를 301, 그리고 홈베이스를 401 제자훈련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된 것은 아니고 세월이 흐르면서 균형있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101을 기초반, 201을 성숙반, 301을 사역반, 그리고 401을 전도/선교 실습반이란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야구시합에서 홈 베이스까지 들어와야 1점이 나는 것처럼 예일교회 성도님들은 영적 훈련에서도 1점은 내자고 목표의식을 드렸습니다.
특히 금년에는 301제자훈련으로 스피드조직신학을 다루게 됩니다. 목장 모임 등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은 질문에 봉착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조직적으로 정리해 놓지 않으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얼버무리거나 하면 본인도 당황스럽고, 질문하는 분도 당황스럽지 않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가정에서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이 조직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야 대화를 하거나 목장 교안을 나눌 때도 자신감 있게, 그러면서도 영감있게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금년에 101 제자훈련을 한 분은 201을 하시고, 201을 하신 분들은 301을 꼭 하시기를 권면합니다. 항존직, 교사 등은 의무적으로 하셔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시면서 우리 함께 힘차게 달려봅시다. 주님이 도우실 줄 믿습니다.
십일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십일조를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드려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물어오신 분이 계셔서 이 참에 목양칼럼으로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말씀드립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드려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물어오신 분이 계셔서 이 참에 목양칼럼으로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말씀드립니다.
1. 하나님은 왜 십일조를 정하셨는가?
1) 십일조는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돈을 벌 수 있는 직장과 능력을 주셨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청지기임을 고백하는 영적 원리입니다.
2) 십일조는 탐욕의 해독제입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탐욕과 이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마 6:24). 십일조는 ‘나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라는 신앙고백입니다.
3) 십일조는 주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해 주셨습니다. 십일조를 하는 한국 교회는 선교를 받은 후 빨리 자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는 나라들은 복음을 받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선교는커녕 아직도 미국이나 한국 등의 재정적 후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한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1) 말라기서는 십일조를 떼어먹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했고, 그 결과 온 나라에 저주가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재앙의 예로 메뚜기가 토지소산을 먹어버리는 일,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는 일 등을 들고 있습니다(말 3:8-11). 결국 십일조 명령의 순종은 하나님의 채우심과 보호하심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고 우리 안에 지켜지는 축복의 길임을 가르칩니다.
2) 온전한 십일조라고 할 때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주급의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만,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온전한 십일조가 되는 것인가를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총 매상보다 순수입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순수입은 총 매상에서 재료비, 관리비, 종업원 봉급, 세금 등을 제한 금액이 될 것입니다.
3. 십일조는 어디에 드려야 하는가?
1) 선교단체도 주의 일을 하니 그 쪽에 십일조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질문도 듣게 됩니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말 3:10) 라는 말씀에서 힌트를 얻게 됩니다. 섬기는 교회에 십일조를 해서 그 교회를 통해 선교지를 섬기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야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2) 순수입에 자녀의 미래를 위한 교육 자금도 들어가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머지 십의 구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경제나 자녀들을 돌보 실 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것을 시험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쪼록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영적으로 바른 관계를 맺고, 또,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라델비아교회를 닮은 교회
소아시아에 있는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께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또 환란 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하여 열린 문을 두며, 성전의 기둥이 될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소아시아에 있는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께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또 환란 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하여 열린 문을 두며, 성전의 기둥이 될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우리 노회의 웨체스터장로교회는 성도 수가 얼마되지 않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을 위해 큰 일을 하는 빌라델비아교회를 닮은 교회입니다. 니카라과 전도대회 때가 되면 대회를 위해 오천 불을 헌금합니다. 그 헌금을 모으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매년 추수감사절기가 오면 석 주 동안 돈까스를 팝니다. 그 수익금이 약 육천불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오천 불은 선교대회 후원금으로 드리고, 천 불은 선교대회 때에 어려운 선교사님들을 조금씩 돕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순절 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 중에 하나를 절제하면서 선교비를 모은다고 합니다. 그 돈으로 선교사님들이 방문하셔서 선교 보고를 하실 때 사례비로 드리고, 또 본 교회는 자체 성전이 없지만 선교지에 지은 교회의 필요를 위해서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사순절 기간동안 커피를 절제하고 한 잔에 3불을 선교비로 드린다고 합니다. 하루 한 잔 마시는 분은 하루 3불, 하루 5잔 마시는 분은 커피를 마시는 대신 하루 15불을 선교비로 헌금한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우리 교회의 좋은 파트너가 되어 지금까지 함께 니카라과 전도대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2008년에 시작된 니카라과 전도대회는 2024년 작년까지 13차에 걸쳐 약 22만명이 복음을 듣게 되었고, 7,500명 정도가 예수를 믿겠다고 결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거지와 가까운 교회로 연결되어 각 교회에서 지속적인 양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니카라과 전도대회는 마사야 주의 약 250개 교회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교회들에게 부흥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대회에 참석해서 도전을 받은 우리 교단 뉴저지노회가 자체적으로 중남미 전도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웨체스터의 한 감리교회 목사님은 이 대회에 참석 하셨다가 감리교회 연회에 보고하고 감리교 연회도 작년부터 이런 전도대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니카라과 전도대회가 각 교회에 선교의 문을 열어줄 뿐 아니라, 다른 노회나 교단들에게도 선교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미국 47대 대통령 취임식
지난 1월20일(월)에는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도날드 트럼프(Donald J. Trump)가 취임했습니다. 취임 연설에서 특별히 귀에 들어 온 말은 하나님께서 지금의 미국을 위해 이 자리에 서게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대통령 선거 유세 때에 펜실바니아에서 있었던 총격 사건을 회상했습니다.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 총알의 의미를 그는 살해의 위협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라는 요청으로 해석했습니다.
지난 1월20일(월)에는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도날드 트럼프(Donald J. Trump)가 취임했습니다. 취임 연설에서 특별히 귀에 들어 온 말은 하나님께서 지금의 미국을 위해 이 자리에 서게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대통령 선거 유세 때에 펜실바니아에서 있었던 총격 사건을 회상했습니다.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 총알의 의미를 그는 살해의 위협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라는 요청으로 해석했습니다.
그의 여러 가지 공약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서너 가지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불법 이민자들의 범죄로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쪽 국경 경비를 강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물가의 안정을 위해 미국에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는 석유와 가스를 개발하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에너지 수출국이 되게 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특히 마음을 시원하게 한 것은 이제 미국에서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둘만 인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성 정체성을 흔들었던 교육 체계가 이제 성경의 교훈대로 바로 잡힌다고 생각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교적으로도 전쟁 인질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등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 고맙게 들렸습니다.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 개신교를 대표해서 기도를 하신 분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장남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님이었습니다. 저의 관심은 기도를 어떻게 끝내는가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몇 년 전 상원에서 어떤 목사님이 기도할 때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신들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고 해서 너무 기가 막혔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님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미국이 다시 성경적 가정관을 회복하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나라가 된 것을 무엇보다 감사했습니다.v
거꾸로 사는 지혜
가수 나훈아씨가 “아!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라는 노래 가락이 팬데믹을 지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결국 세상이 어둡고 살기 힘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원래 설계도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거기서 오는 고통의 문제를 그 뿌리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표면적 현상에서 찾으려고 하니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수 나훈아씨가 “아!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라는 노래 가락이 팬데믹을 지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결국 세상이 어둡고 살기 힘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원래 설계도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거기서 오는 고통의 문제를 그 뿌리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표면적 현상에서 찾으려고 하니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주면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안 주고 빼앗으려 하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겨야 한다고 하셨는데, 강한 자가 섬기기는커녕 약한 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니 세상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있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주의화 된 세상에서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영적 공동체는 예수님처럼 이 세상의 가치를 거꾸로 사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의 꿈을 꾸는 사람들로 하여금 만들어지는 꿈의 나라입니다.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비전의 나라입니다. 나는 행복한데 남의 불행하면 이것은 꿈이 아니라 탐욕입니다.
거꾸로 살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모험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반드시 부활로 연결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부터 이 작은 하늘나라 운동이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3 ‘Jo’
지난 1월 7일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산불은 강풍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LA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한 일이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번져나가는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7일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산불은 강풍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LA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한 일이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번져나가는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알기 쉽게 표현하면 서울 면적의 20%에 해당하는 면적이 불에 탔다는 것입니다. 재산 피해도 73조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LA에 살고 있는 지인은 산불로 인한 연기가 심해 가족과 함께 안전한 지역의 호텔로 잠시 피신해 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어떤 청년은 저에게 이것이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냐고 물어왔습니다.
고난의 문제는 우리의 작은 지혜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그리어(J. D. Greear)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고난의 문제에 대해 3 ‘Jo’로 설명한다고 합니다.
1. Job(욥):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를 알게 됩니다.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기서를 통해 고난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2. Joseph(요셉): 요셉은 고난을 통해 가족과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 Jonah(요나): 요나는 고난의 징계를 통해 자기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정신 차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형편이 다를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 중 하나 이상은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의 질문은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세상에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죄악과 고통 가운데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시고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죄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은 반드시 부활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입니다.
새해의 기도
주여!
새해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로 영적 면역력을 키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게 하소서.
153기도와, 교회를 위한 40기도가 생활이 되게 하소서
주여!
새해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로 영적 면역력을 키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게 하소서.
153기도와, 교회를 위한 40기도가 생활이 되게 하소서
주여!
새해에는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단순히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 봉사하게 하소서.
주여!
새해에는 더욱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사랑을 받기 보다 먼저 사랑하게 하시고,
섬김을 받기 보다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여!
새해에는 광야에 길이나고,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소서.
광야에서 그 물을 하나님의 백성들로 마시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크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주여!
새해에는 우리 교회를 더욱 부흥케 하옵소서.
주님께서 세우실 때의 마음과 목적을 이루게 하옵소서.
모든 교회의 본이 되고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새해에는 미국과 대한민국을 축복하옵소서.
분열과 상처에서 일어나 화해와 평화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열국을 향한 제사장 나라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포로가 된 자들 중 페르시아 왕국의 고위 관리로 임명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에서 그를 방문한 하나니라는 사람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포로가 된 자들 중 페르시아 왕국의 고위 관리로 임명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에서 그를 방문한 하나니라는 사람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성벽은 적군들이나 맹수로부터 성 안의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것은 나라의 치안이 무너져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고 울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느 1:6-7).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을 겪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하던 국무총리도 탄핵되었습니다. 마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에 탄 채로 남아있는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백성들은 둘로 갈라져서 서로 반대편의 잘 못이라고 탓하고 있고, 느헤미야처럼 자기 죄라고 고백하며 회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독교 변증가 C. S. Lewis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이 편지는 마귀가 신참인 그의 조카 마귀에게 한 조언을 편지처럼 쓴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안일한 시대에는 인간들이 더 깊이 잠들게 하는 것이 우리 소임이야. 하지만 지금처럼 균형을 잃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시대에는 엄청난 교만과 증오를 키워 분열의 불을 더 붙여야 한다. 원수(예수님)에 대한 극단적인 헌신만 빼 놓는다면, 극단적인 경향은 무조건 부추겨야 한다.” 정치가들은 자기들의 극단적 이념 투쟁에 빠져 이 영적인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예수께 대한 극단적 헌신만이 나라를 다시 세우는 길이라는 것을 마귀도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비록 우리는 미국 땅에 살고 있지만 한 시도 조국 대한민국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 부모 형제와 친지들이 그 땅에 살고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느헤미야처럼 울고 회개하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속히 국정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이 난국이 전화위복이 되어 대한민국이 열방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을지기, 목자, 총무의 밤
지난 월요일 밤에 2024년 한 해 동안 수고하신 마을지기, 목자, 총무 위로의 밤이 있었습니다.
총 3부로 진행되었습니다. 1부에 예배를 드리고, 2부에 식사를, 그리고 3부에 감사 나눔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밤에 2024년 한 해 동안 수고하신 마을지기, 목자, 총무 위로의 밤이 있었습니다.
총 3부로 진행되었습니다. 1부에 예배를 드리고, 2부에 식사를, 그리고 3부에 감사 나눔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저는 목장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사도행전 2:41-47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으로 그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엄지는 으뜸을 말하는데 목장이라는 소그룹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되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검지는 방향인데 목장의 방향은 복음의 은혜를 나누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지는 리더십인데 목자는 선한 목자인 예수님을 닮아 목원들을 위해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약지는 결혼할 때와 같은 약속인데 목원들의 연약함과 아픔을 위해 서로 짐을 지며 사랑으로 기도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갈 6:2).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지는 새 가족이나 신앙적으로 어린 목원들을 잘 적응하도록 인도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부 식사 시간에는 봉사부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식당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심이 서려있어서 감동이었습니다.
맛과 함께 정성을 먹는 기쁨은 모든 참여한 분들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수고하신 봉사부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3부는 각 목장에서 쓴 감사의 글들을 읽고 서로 축복하는 기도와 찬송을 부르며 모든 순서를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마쳤습니다.
제출해 주신 감사의 글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중보기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톡방을 통해 성경읽기를 격려한 것이 신앙 성장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새 가족으로 등록하고 교회에 정착하고 소속감을 갖는 데 목장이 큰 역할을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목자와 목녀의 헌신을 통해 헌신하는 삶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어 감사합니다.
추수감사 마을 찬양제를 통해 목장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교회에 출석을 아직 못하지만 남편이 목장에는 첫 발을 내딛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목원들의 따뜻한 섬김과 배려 덕분에 큰 위로와 기쁨을 얻었습니다.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나이다.
아모스 7장에는 아모스 선지자의 중보기도가 있습니다. 아모스는 남왕국 유다 출신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아모스 7장에는 아모스 선지자의 중보기도가 있습니다. 아모스는 남왕국 유다 출신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당시 북왕국은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적 강성함은 자신들의 힘과 노력으로 된 것인 줄 착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었으며,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를 약탈하는 등 사회 정의가 무너져 있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이방나라를 일으켜서 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환상을 봅니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어버리는 환상이었습니다. 이 때 아모스 선지자는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하며 기도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십니다. 두 번째는 불이 나와서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는 환상이었습니다. 다시 아모스 선지자는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하고 기도합니다. 그 때 다시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심판의 뜻을 철회하십니다. 너무 놀라운 장면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기도했습니다. 손에는 공의의 매를 들고 계시지만
가슴에는 사랑의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에서 예레미야도 이것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그리고 아모스 선지자는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심판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지금 한국의 불안한 정치 상황을 보면서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대한민국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청하건대 사하소서. 청하건대 심판을 그치소서.
대강절(Advent)
대강절은 성탄절 전 4주간을 의미합니다.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촛불을 켜며 마음을 준비합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 4주간을 의미합니다.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촛불을 켜며 마음을 준비합니다.일반적으로 서구 교회에서는 둥근 월계수에 5개의 초를 꼽고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둥근 월계수는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처음 세 주는 보라색 초에 불을 밝힙니다. 회개하며 정결한마음으로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주는 분홍색 초에 불을 밝힙니다. 기쁨으로주님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탄절 당일에는 월계수 중앙의 흰색 초에 불을 밝힙니다. ‘순결하신 주님 내 마음의 중심에 오시옵소서’라는 의미입니다.금년 대강절을 위해서 4복음서에 나타난 성탄 이야기에서 네 편의 설교를 뽑아 보았습니다.대강절 1: 임마누엘(마 1:18-25) 대강절 2: 주의 길을 준비하라(막 1:1-8) 대강절 3: 하나님께 영광, 땅에 평화(눅 2:1-14)대강절 4: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14)그러므로 우리는 대강절을 맞아 우리의 신앙 자세를 새롭게 단장하고, 초가 자기를 태워 빛을 발하듯이소외되고 외로운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절기가 되도록 힘써야할 것입니다.그리고 마침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정결한 신부로서 등불에 기름을 준비하는기간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5년만에 다시 열린 추수감사 찬양제
지난 주일에는 추수감사주일로 온 성도들이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가운데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추수감사주일로 온 성도들이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가운데 예배를 드렸습니다. 입교 예식을 통하여 신앙적으로 잘 자라 준 자녀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부모님들 뿐만아니라 온 성도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세례식을 통하여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믿음으로 태어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함께 보며 축하했습니다.찬양대의 감사 찬양을 통해 한 해의 감사를 곡조있는 기도로 하나님께 풍성히 올려 드렸고, 6선교회가 마련한 감사절 만찬은 언제나 맛, 섬김, 사랑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습니다. 오후에 있었던 추수감사절 마을 찬양제는 5년 만에 재개되었지만 전혀 녹슬지 않은 열정과 은혜로 우리 마음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추수감사 마을 찬양제를 보면서 느낀 소감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1. 어린이로부터 80대까지 온 성도가 함께 모여 성전이 가득찼다. 하나님의 가족의 하나됨을 느꼈다.2. 정성을 다해 준비한 찬양의 열기로 성전이 가득찼다. 한 팀, 한 팀이 부른 찬양이 너무 은혜스러웠다. 은혜와 감사로 가득찼다.3. 다양한 요소를 다 모아 찬양했다.복장 준비의 다양성과 정성을 보았다. 악기는 기존의 클래식 악기에 더해서 북, 리코더, 우쿨렐레의 등장이 새로웠다. 몸으로 찬양하는 율동도 창의적이었고 즐거움으로 가득찼다. 찬양과 율동 뿐만 아니라 스크린을 이용하여 감사의 메시지의 풍성함을 더했다.4. 영어 찬양이 늘어났다. 교회가 이민 1세대 중심에서 2세대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음을 보았다.5. 새가족들이 함께 참석해서 음악적으로나 아이디어에 힘을 더해서 좋았다. 또, 새가족들은 말로만 듣던 추수감사 찬양제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을 나누어서 좋았다.6. 찬양제 후에 함께 찬양한 목원들과 식탁 교제를 나누어서 좋았다. 당회 장로님들께 감사했다.7. 교역자들이 한 해동안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찬양했다. 열렬히 호응해 주신 성도님들로 인해 많은 힘을 얻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그렇게 ‘앙콜’을 외치셨는데 앙콜 곡을 준비하지 못해 성원에 보답하지 못해 아쉬웠다.8. 사정상 감사찬양제에 함께 하지 못한 성도님들, 한국에 계신 성도님, 또 텍사스에 계신 성도님도 이 날 만큼은 온라인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아버지가 남긴 유언
유대인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돈 많은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멀리 유학을 보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돈 많은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멀리 유학을 보냈습니다.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유언장을 아들에게 남겼습니다. 그 유언장에는 모든 재산을 종에게 물려주고 아들은 그가 원하는 한 가지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종은 기쁜 마음으로 그 유언장을 가지고 아들을 찾아 갔습니다. 유언장을 본 아들은 엄청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장례는 치러야 하기에 종과 함께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아들은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존경받는 랍비를 찾아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랍비는 의외로 당신 아버지는 매우 현명하신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들은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랍비는 당신 아버지가 이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종은 당신아버지의 임종도 알리지 않고 재산을 모두 팔아 멀리 도망갔을 거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한 가지를 가질 수 있으니 그 종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종의 소유는 다 주인에게귀속되었습니다. 그제야 아들은 아버지의 깊은 뜻과 큰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의 짧은 생각으로 아버지를 잠시나마 원망했던 것을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아들은 종과 함께 아버지의 유산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 이야기를 묵상해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는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