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절의 영감
지난 목요일 제가 학장으로 섬기고 있는 뉴욕장신에서 개강예배가 있었습니다. 예배 후 교수님과 학우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데 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교수님은 AI 사용을 권장하는 신학교에서도 강의 하시는데, 한 번은 이런 경우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어떤 학생이 질문을 하기에 답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조금 후에 다시 손을 들더니, 그 질문을 AI에게 물어보니 교수님과 다른 대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AI는 하나의 대답을 할 수 있지만 신학은 여러 대답이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그 대답은 깊은 영감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요.
점차 인공지능의 사용이 우리 삶의 영역에서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졸음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무인 자동차가 대신 운전을 해 주니 희소식이 될 것입니다. 의료기관에서도 이미 로봇을 사용하여 수술도 하고, 환자에게 필요한 약 처방도 인공지능이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해 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법정에서도 방대한 판결 자료를 분석하여 소송 당사자나 변호사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승소를 이끌어 내는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강도 만난 사람과 그를 도운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제사장도 그냥 지나갔고 제사를 돕는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멸시 받던 사마리아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포도주와 기름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여관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볼 일을 마치고 돌아 올 때 더 돈이 들면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간 것에는 아마 중요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강도가 숨어서 다른 행인을 노릴 수 있으니 빨리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과, 죽은 사람을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구약의 율법의 조항들이 생각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AI도 줄 수 있는 정보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에게는 상처받은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는 연민과 동정심이 있었습니다. 자기 것을 희생하여 남을 치유하고 회복하게 하는 섬김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AI가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I는 많은 정보(deep learning)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깊은 영성(deep Spirit)과 깊은 통찰력(deep insight)은 줄 수 없습니다. 깊은 영성과 통찰력은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과 동행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요구한 것과 같이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때입니다 (왕하 2:9).